부패불감증과 부패 결벽증은 모두 치유의 대상이다.
부패보다 무능이 더 싫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돈 적이 있다.
부패 때문에 국가 재정과 국민 감정이 얼마나 손상되었던가?
뇌물을 주면 안되는 일이 없고,
권세가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개탄한 적은 언제이든가?
자리를 차지하면 우선 한탕 할 것부터 생각하고,
제 잇속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마음대로 만들고 바꾼다는 불평한 때가 언제이든가? 부패 때문에 일할 의욕이 줄고 허탈과 분노가 극에 달한 때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다시는 부패가 발붙일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 적이 엊그제가 아니던가?
부패 청산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없다고 떠들던 때가 언제이던가?
이렇게 보면
혹 우리는 어느덧 부패에 대해 너무 관대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부패가 만연되었다 함은 너와 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부패에 젖어 있고,
그래서 자기 부패가 드러날까 두려워 한 나머지 남의 부패에 대해 더 가혹하며,
심지어는 그럴듯한 논리로 부패를 감싸려 하는 것은 아닌가?
오죽 했으면 무능보다 낫다고 할까 이해도 해보지만,
도대체 무능하면 얼마나 무능하길래 차라리 부패가 낫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부패 만연과 부패 불감증 만연 때문이라면 하루 빨리 치유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치유되어야 할 병리가 있다.
그것은 부패 결벽증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가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참 감동적인 말이다.
남이 무엇이라 하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나 하늘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볼 때,
꺼림칙하거나 부끄러워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존경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의심하고 물고 늘어지면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환장하겠다든가 속이 뒤집힌다는 등과 같은 비어도 서슴지 않게 튀어 나올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들 하는 말로 모두들 변명과 방어를 일삼는 판에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살맛이 나고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부패 불감증 때문일까,
갑자기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사람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인류 역사상 과연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생각해보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무흠, 무죄로 인정받는 예수님을 빼고 누가 또 있을까?
현대적 성인으로 숭앙 받는 테레사 수녀도
‘내안에 간디와 히틀러가 동시에 살아 있다.’고 했지 않은가?
갓 태어났거나 자기 의지가 미발달된 사람이라면 몰라도, 무흠, 무죄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여기에 원죄까지 생각하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대로서는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부패와 연결지어보면
부패가 전무한 사람, 부패로부터 완전 자유로운 사회란 과잉기대라 해야 할 것이다.
과잉 기대가 아니라 과오 기대라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부패를 무작정 용인하거나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일단 너도 나도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부패라는 것은 완전하게 차단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누구나 부패할 수 있고 알게 모르게 어떤 부패엔가는 연루되어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뇌물을 받았다든가 청탁을 했다고 하면
금방 사람 취급도 안하고 상종도 않는 태도 돌변만이라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자기의 부패 가능성과 부패 연루는 모른척하거나 관대하면서
남의 부패는 침소봉대하거나 가혹하게 대하는 습성을 억지로 억제시키면 좋지 않을까?
부패 동정론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온정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안다.
그렇지만
무흠이나 부패 완전 차단과 같은 과도한 이상주의 또한 그렇게 유익해 보이질 않는다.
아니 유익과 무익을 떠나 너무 무리해 보인다.
심지어는 생명 경시, 공포 사회의 서곡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이유를 들어 사람을 잡고, 그 이유로 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만들어 갔던
지난 고통의 역사들이 떠올라 두렵기까지 하다.
속죄양 만들기, 상대방 죽이기, 분위기 전환시키기 등
인권유린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
숙청, 사회정화, 인민재판, 마녀사냥, 부패척결 등
생각해보면 참으로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바로 그 범위에 속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무흠이나 부패완전 차단과 같은 과도한 이상주의는
부패결벽증이라는 증후군으로 나타나 사회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부패인지 아닌지도 구별 못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부패에 연루되는 것이나
부패는 완전히 차단할 수 있고
부패한 자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나
다같이 사람을 괴롭히고 사회를 공포에 빠뜨린다.
부패 불감증은 당연히 치유되어야하겠지만
부패결벽증 역시 치유되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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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8.30 -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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