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애옥살이 : 독후감4

강원대학교 김학래   (컴퓨터전공 4학년 20001653)
    이제 완연한 여름인가 봅니다. 바람이 솔솔 통하는 속옷과도 같은 티셔츠 달랑 하나 걸치 고 천천히 걸어도 금새 땀이 온몸에 흘러내립니다. 이렇게 더운 날, 여전히 교수님은 보다 더 나은 강의와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다양한 생물들과 눈을 부라리며 씨름하고 계시겠 죠. 어느 덧, 벌써 기말고사가 끝나고 두 번째 레포트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중간고사 무렵 에 독후감으로 쓴 '꿈꾸는 달팽이'가 기억납니다. '어머님 전상서', '사랑하는 딸에게', '이런 제자, 저런 일'. 숙제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보람 과 진정한 기쁨으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담아 놓은 한 권의 책을 저와 같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읽고 그 러한 삶의 지식들을 가져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송구스런 마음마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교수님의 정성어린 저서들을 읽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나도 권오길 교수님처 럼 이 자연과 생물에 대해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한 발짝 다가서고 싶다'는 심정으로 한 페 이지 한 페이지 조심스레 책장을 넘깁니다.

    지난 '꿈꾸는 달팽이' 독후감을 쓸 때에도 한 번쯤 들어본 '애옥살이'라는 단어에서 처음에 는 '애틋함', '가엾음'이란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저처럼 이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서 친 절하게도 책의 겉 표지에는 '애옥하다' 라는 말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살림 이 아주 구차하다는 뜻. 따라서, '애옥살이'는 가난에 쪼들려 고생스럽게 사는 살림살이를 말 하고 있음을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렸을 적, 저희 가정도 '애옥 살이'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농어촌진흥공사'에 공사원으로 근무하셨고, 어머니는 동네의 과자공장에서 사탕과 과자를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아침 일찍 출근하셨기 때 문에 오후에 학교에 다녀오면 집 안은 텅텅 비어서 인기척조차 없어 괜한 어린 마음에 홀로 동네를 한 바퀴, 두 바퀴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어 엄마(지금도 엄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가 먼저 집으로 돌아오실 때면 집으로 통하는 길 목 멀찌감치 미리 가서 엄마를 깜짝 놀라시게 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밤늦게 들어오셨습니다. 엄마는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따뜻한 저녁밥을 해주시는데 그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심정도 모르 고 그저 말썽만 부리며 어머니를 들들 볶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뿐입 니다. 한번은 비어있는 집에 홀로 가기가 싫었는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 집에 놀러갔습 니다. 아파트도 아니고 작은 빌라 비슷한 건물에 친구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푹신한 소파, 앉을 때 통통 튀는 침대, 실내 전등과 베란다는 우리 집의 마루, 앞마당, 그리고 냄새나는 밭과 확연히 비교되어 내 두 눈을 따갑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신기해서 몇 시간을 친구 집 에 머물러 있다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변함 없이 저녁밥을 차리고 계셨고 내 눈에 보이는 집 안의 모든 것이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벽에는 금이 가서 언제 무너 져 내릴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집, 그것도 전셋집이었고, 학교에서도 한참을 걸어서 논과 밭을 지나 길고도 긴 골목길을 걸어야 집이 보였습니다. 우리 집은 왜 다른 집처럼 소파와 침대가 없냐고 엄마에게 심통을 부려 이 날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형과 함께 크게 혼이 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눈물을 삼키며 형과 저를 회초리로 때리시며 어렵게 나를 달래 주시던 어머니의 심정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좀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가기 전, 정말 순진하고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나의 어린 시절은 내 마음 깊숙한 그 곳에서 '애옥 살이'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홀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머니, 그 때의 저를 용서하세요. 이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깨닫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불효자를 용서 해주세요. 앞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애옥한 삶으로 저희를 이토록 성 실한 청년으로 키워주신 그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할 때면 평소 누군가 충분 히 오해할 눈물마저 나곤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죽음에 관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고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 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가장 처음에서 다룬 '부인의 죽음 앞에 노래 부른 장자'에서 나왔듯이 레밍 쥐를 비롯한 몇몇의 동물들이 어느 시기가 되면 무리를 지어 집단 자살이나 떼죽음을 감행한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이 알게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집단의 밀도를 조절하여 결과적으로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된다 고 하니, 인간이 아닌 동물들까지도 어린 세대들에게 늙은 세대들이 자리를 양보하고 대를 이어나간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배워야할 아름다운 한 구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오 래 살겠다고 자녀들에게 고통을 안기며 어렵게 생을 살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동물처럼 적 절한 시기에 아래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양보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인 것 같습니다.

    책의 처음부분부터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가 너무 뚱뚱해지자 일부러 촌충에 감염돼 6개월만에 105킬로그램에서 55킬로그램으로 몸무 게를 줄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영양과 지방을 촌충이 먹어치웠기 때문이라는 말 에 '아, 정말 그렇구나' 라고 감탄사를 절로 지으며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일부 러 불결한 생선을 뒤져서 감염된 것을 먹었던 의사 선생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 그러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투철한 연구에 대한 의욕과 직업 의식에 입을 쉽게 다 물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밥이나 기타 간식 등을 매우 잘 챙겨먹는 제가 살이 잘 찌 지 않는 이유가 바로 제 몸 속에 촌충이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당장에라도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한번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청결은 병", "자네들, 촌충이 뱃속에 있거든 그것 떼지 말고 그냥 한 30년만 견디며 지내시게"라는 책의 명언에 힘입어 그저 이대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말로 요즘에는 의학 기술의 발달과 위생 환 경 개선으로 뱃속에 촌충을 가지고 살만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시대가 온 것이 사실입 니다. 촌충을 가진 사람이 국보(國寶)라는 말이 이제 실감이 납니다. 제가 생각해도 위와 같 이 말씀하신 교수님의 그 스승님은 정말 '미래를 꿰뚫고 계시는구나' 다시 한번 감탄사를 짓 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저의 눈길을 자극했습니다. 무조건 오래 산다고 좋은 것은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붓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남아있는 후손들에게 크나 큰 고통을 안겨줄 뿐인 것을 무지한 사람들은 그 저 자신만을 위해 살다보니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정정당당하게 받아들 이고 대신 사는 동안이나마 건강하게 살다 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 에 적극 저도 동의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웃는 자가 참다운 인생의 승리자라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돈 때문에 명예와 권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경우를 매스컴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을 때는 모두 빈손으로 가게 되는 것을,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돈에 목숨을 거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웃으며 삶을 살다 가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교수님께서는 적당한 노동 이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고등학교 1, 2학년 때 봉사활동 동아리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을 해보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땡볕의 무더위 속에서도 밭을 일구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 그리고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일 등 많은 '노동'을 해본 경험이 있습 니다. 물론 숨막히는 그 곳 안에서 삽질을 할 당시에는 그 자체가 고통이고 노동이었으며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하며 후회감마저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고 삶의 재산임을 자부하게 되었 습니다. 적당한 노동, 적당한 운동이라는 말에 지난 교수님의 강의 시간에 배운 미토콘드리 아가 떠오릅니다. 운동이나 노동을 하게 되면 물질 대사의 진원인 미토콘드리아의 수가 증 가하여 양분과 산소가 결합해 열과 에너지를 술술 잘 낸다고 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세 포의 발전소'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착하게 살아도 짧은 인생 이니 선을 쌓고 덕을 쌓음을 생활의 신조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가" 하신 교수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이제부터라도 나의 짧은 인생을 보다 더 알차고 선과 덕으로 가득 찬 삶 으로 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중략!

    하나의 예로, "재수 옴 붙었다"라는 표현입니다. 지금까지는 남이 그런 말을 쓰니까 나도 덩달아 따라서 썼을 뿐입니다. 사람에 기생하는 곤충에 옴벌레라는 것이 있는데 이놈에게는 살갗을 녹이는 효소가 있어 주둥이를 대고 침을 조금만 분비하면 살갗이 스르르 녹아 구멍이 뚫린다고 하니 지금껏 시달렸던 모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 다. 일단 물리고 나면 너무도 가려워서 피부에 피가 나도록 문지르고 긁어도 또 긁게 됩니 다. "재수 옴 붙었다"라는 표현이 이와 같이 고통스럽고 온갖 신경이 곤두서도록 '제대로 걸 렸다' 또는 '잘못 걸렸다'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기생충, 곰팡이, 세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또다시 지난 교수님의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이 뇌리를 스칩니다. "우리 피부에 붙어사는 대부분의 세균은 다른 병원성 세균의 침입 을 막아주는 유익한 공생 세균이다", "비누를 많이 쓰지 말라", "샤워도 너무 자주 하면 피 부에 해롭다", "때를 심하게 벗기지 말라" 등 이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참다 운 삶의 지혜임을 그동안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2주일 전에 친한 선배 2명과 함께 목욕탕에 갔습니다. 온탕에 20분 정도 몸을 담근 뒤에 나란히 자리에 앉아서 때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때 교수님께서 하신 위의 말씀이 딱 생각이 났습니다. "때를 심하게 벗기지 말라". 아예 때 수건을 만져보지도 않고 물에 들어가 피로만 풀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선배들이 "너 왜 때 안 밀어?"라고 묻자, 저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형, 때 밀면 몸에 해로 워요". 형들이 나를 비웃으며 "누가 그래?"하며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좀 더 많은 것을 형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형들의 등을 아주 빡빡 밀어주고 저는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요즘 어느 누가 이런 사소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왜 때를 밀면 몸에 해롭고, 왜 비누칠을 많이 하거나 샤워를 자주 하면 좋이 않은지 이유를 알지 못해 한편으로는 정말 답 답하기만 하지만 다행히 저는 교수님을 만나 강의를 들어 이제 그런 어리석은 사람으로부터 한 걸음 나와 설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행복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2003.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