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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컬럼 : [생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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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 2003-7-28

[생물이야기 329] 담석은 간, 요석은 콩팥에서 생긴다. (6) : 2000-12-22

　쓸개가 없으면 소화에 어떤 지장이 있을까? 그리고 대변과 소변의 색깔이 왜 누르스름할까?

　쓸개즙은 쓸개주머니(담낭)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肝)에서 생성되어서 일단 이 주머니에 잠시 저장이 되었다가 위(胃)에서 음식이 내려올 때 이자액과 함께 십이지장(샘창자)에 쏟아져 나간다. 담낭이 꽉차면 분비를 하는데 보통 하루에 5번이나 어떤 때는 18번까지도 담관 괄약근(括約筋, duct's sphincter)을 열어 소장으로 내 보낸다.

　쓸개즙은 직접 소화에 관여하는 소화효소는 들어있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지방(脂肪)을 소화가 잘 되게 유화(乳化) 시킨다. 아마도 흔히 그렇게 말하지만 다른 곳(것)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안다. 아무튼 쓸개를 뗀 필자 같은 사람들은 기름기 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 쪽을 전공하는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3개월 정도 지나면 몸은 다 적응하여 아무거나, 얼마든지 많이 먹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쓸개즙(bile juice)은 하루에 보통 반 되(0.9ℓ)가 넘게 분비되는데 소량의 단백질과 빌리루빈(bilirubin)이라는 색소가 그 주성분이다. 빌리루빈 색소는 쓸개주머니에서 물을 재흡수하여 농도가 진해지면 짙은 녹색을 띠지만 음식과 섞여서 묽어지면 누르스름해진다. 그리고 소장으로 나간 쓸개즙은 그냥 흘러 내려가지 않고 소장에서 95%는 재흡수되어 몸으로 되들어오니 「생물 경제학(biological economy)」을 논할 때 드는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미리 결론을 지어 말하면 대소변의 노란 색깔은 다름 아닌 이 빌리루빈 색소 때문인 것이다. 똥색이 또 오줌이 누르스름한 것이 이 빌리루빈 색소라는 말인데, 이 색소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우리 몸의 적혈구는 넉달(120일)을 살아 산소를 운반하는 일을 다하고 나면 간이나 지라(비장)에서 파괴되어 버린다. 간과 지라가 붉은피톨의 화장터란 말인데, 적혈구가 분해될 때 바로 이 색소가 부산물로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 참, 적혈구에서 누런 똥오줌 색깔이 배어 나온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생물이야기 328] 담석은 간, 요석은 콩팥에서 생긴다. (5) : 2000-12-16

「살아가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지만 병마와 싸우는 것은 시간과의 다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가면 나을 병임을 알고 있기에 때때로 지루함을 느낀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다행하다면 이런 증상은 어느 정도 병세가 호전되어서 퇴원 막바지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는 사람과 말을 걸고 서로 병을 위로하는 것도 제 몸이 너무 아플 때는 엄두도 못 낸다.

　병원 복도에서 한 젊은이를 만난다. 안쓰럽게도 피통(피가 불그스름하게 고인 통)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이 사람에게 말을 건네 본다. 난 쓸개를 뺐는데 젊은이는 어디가 아픈가? 서슴없이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고 한단다. 그런데 아연, 놀랍게도 이 친구가 내 방 바로 건너편 통로에 와서(다들 밥을 먹고 나서 모여와 한 대씩 하는 곳)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쓸개를 뗀 나도 그놈을 끊어볼 참으로 독하게 작심을 해 보는데 아니, 저런 허파에 구멍이 난 친구가 담배를 피우다니. 그 사람이 나의 짧은 설득에 「디스」 담배 한 갑과 불통을 단방에 던져버리고 갔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것이 통째로 사라진 것을 보면, 주인이 다시 들고가 피워 물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노수(老●)도 살아보겠다고 금연을 생각하는데 홍안(紅顔)의 청년이 제 몸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도 원고를 쓰면서 담배 때문에 혼쭐나고 있다. 과연 내가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보통 금연을 여섯 일곱 번을 시도해서 끊는다고들 하는데 필자는 겨우 두 번째가 아닌가? 20여 일 몹시 아팠기에 담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 금단현상(禁斷現象)이 자동으로 넘어가 금연이 훨씬 쉬울 터인데도 울컥 울컥 앞가슴을 치미는 담배 욕구를 은단(銀丹)알갱이로 억누르기가 그렇게 힘이 든다. 아, 무서운 담배 중독! 40년이 넘은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없애고 고친다는 것이 어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담배를 안 피우면 폐 조직이 재생하면서 검은 분비물을 계속 내 뱉어 놓는 다는 말이 맞다. 보통 금연 3개월까지 시커먼 가래가 나온다고 하는데 지금도 연해서 검은 가래가 보인다.

[생물이야기 327] 담석은 간, 요석은 콩팥에서 생긴다. (4) : 2000-12-08

　지난 회에 환자(필자)가 다섯 줄에 묶여 옴짝 달싹을 못하는 모습을 소개했었다. 그 다섯 줄 중에서 링거줄은 생리적 식염수나 포도당을 공급하기도 하지만 그 줄에다가 항생제(抗生劑·antibiotics)등 여러 가지 약을 놓기 위해서 퇴원 무렵까지 매달아 둔다. 그 많은 주사를 매번 엉덩이에다 놓았다면 얼마나 아플 뻔했던가.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이 늙다리도 아프고 무서운 것이 주사 맞는것이었으니 어린아이들이야 어떻겠는가. 병원은 곧 주사로 상징된다.

　항생제 말이 나와서 조금 보태보면, 수술 후에 쓰는 항생제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이 약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 했나하는 생각을 여러번 하였고, 그 많은 약이 병원세균을 죽이고 병을 낫게 한다 생각하니 사람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다시 느꼈다.

　인간이 만든 항생제가 대략 300가지가 되는데 이것들은 모두 세균이나 곰팡이에서 뽑은 것이다. 항생제란 이런 미생물들이 상대(다른 미생물, 미생물끼리도 박이 터지도록 싸운다.)를 공격하고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만들어 내는 물질로, 사람은 이들 미생물을 대량으로 배양하여 항생제를 분비케 하고 그것을 모아 주사제나 알약으로 정제하여 쓰는 것이다. 페니실린(penicillin)으로 시작한 항생제가 그 가짓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으로 한 종류의 항생제는 반드시 한 종의 세균이나 곰팡이에서 얻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의 여러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더 강력한 항생물질을 분비하는 세균이나 곰팡이를 찾고 있다.

　어쨌거나 항생제가 없는 병원, 수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어찌 보면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이런 약과 여러 기계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그저 보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환자들은 따뜻하고 친절한 의사선생과 간호원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의사와 간호사의 가장 바라는 소원이 무엇인가를 나는 알았다. 의사는 자기가 집도(執刀)한 환자가 말 그대로 「교과서대로」 나아가는데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간호사는 환자가 아프지 않게 주사 바늘을 혈관에 잘 꼽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라는 것을 나는 보고 느꼈다.

　고마운 그이들!

[생물이야기 326] 담석은 간, 요석은 콩팥에서 생긴다. (3) : 2000-12-02

　막 배(복부) 바닥을 길게 세로로 한 뼘이나 가른 필자의 꼬락서니를 한 번 보자. 그래서 수술을 한 후에 곧바로 병 문안을 가(오)는 것은 서로가 못 할 일이다. 눈이 퀭하게 들어가 생기를 잃어 창백하게 다 죽어가는 모습에, 여기 저기 줄을 디룽디룽 매달고 있는 꼴이 처연하기만 하다.

　커다란 링거병(甁)에서 내려진 기다란 개 끈(줄) 끝에는 굵다란 바늘침이 팔뚝의 정맥을 쿡 찔러 쑤셨고, 위액과 허파의 분비물을 모으는 코뚜레가 코를 꿰었고, 방광의 오줌도 조절을 못하니 요도에도 줄이 꿰었고, 옆구리에서 두 줄이 덜렁거리니 하나는 쓸개액(담즙)을 받아내는 것으로 진한 녹색 즙 주머니에다, 딴 하나는 복막과 배 가죽 사이에 고인 핏물을 받아내는 하얀 「수류탄」주머니로, 잘 관찰하면 쭈그러져 있어서 조금씩 펴지려는 성질이 있으니 수술 끝에 고이는 복강(腹腔)의 혈장을 조금씩, 천천히 뽑아낼 수가 있도록 되어있다. 아무튼 몸에 이어진 끈이 무려 다섯개나 되니 거미줄에 매인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모습을 보고, 보이는 것이 서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때는 아직도 마취가 덜 깨어나 정신도 몽롱하고 기억력도 어둔하다.

　차근차근 마취가 사라지면서 자율신경과 중추신경이 제 기능을 되찾게 되고, 오줌 줄에 이어서 코뚜레도 빼게 되니 이만해도 살 판을 만난 것이다. 아, 이 아프고 귀찮은 코뚜레만 뽑았으면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놈을 빼고 나니 또 다른 욕심이 기다리고 있다. 입원 생활은 다름 아닌 시간과의 싸움인 것이라 시간이 흘러 결국에는 이 다섯 줄에서 해방이 되었으니 아픔 뒤에 오는 이 쾌감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끄나풀에서 해방하는 그 상쾌한 기분 말이다.

　수술에 쓰는 마취약도 중요한 것이지만(생으로 배를 짼다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진통제(鎭痛劑)가 없어서도 안된다. 수술한 자리가 못 견디게 아파 오면 눈에 뵈는 것이 없고, 환자가 짜증을 내면 보호자가 얼마나 괴로운가를 배려할 겨를이 없다. 한 마디로 짐승과 다름없는 수성(獸性)이 엄습하니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을 되뇌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생물이야기 325] 담석은 간, 요석은 콩팥에서 생긴다. (2) : 2000-11-25

　새 하얀 은백광(銀白光)의 세계!? 미칠 듯 온통 눈이 부시는, 『환장하겠다』는 말이 실감 나는 딴 세상(外界), 이것이 수술 후에 가장 먼저 엄습해오는 말못할 고통이다. 그것도 회복실에서 한 시간이나 지난 뒤의 세상인 것이고, 잠깐이나마 마취약에 취해서 세상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피를 철철 흘리며 배를 갈랐으나 그것도 모르고 곤히 낮잠을 잤던 것이다. 병실에 실려와서도 딴에는 체면을 중시하여, 『왜 이런 나의 몰골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게 하느냐』고 집사람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더라고 하니, 수술 후 반 마취 상태에서 그 사람의 본성(本性)이 나와서 어떤 사람은 울어대고 어떤 이는 욕지거리를 한다는데 그래도 체면치레를 생각했다니 그만하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신마취를 하면 뇌는 물론이고 내장까지 마취(痲醉)가 되어서 길게는 며칠 동안 정신이 멍해지고 창자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방귀를 끼었느냐를 따지게 되니 방귀를 낀다는 것은 창자가 마취를 깨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하여, 방귀를 낀 다음에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처음에는 묽은 미음을 주고 다음에 걸쭉한 죽, 그 다음엔 된밥 순서로 창자를 적응시켜 나간다. 필자의 경우만도 큰 수술이 아니라(2시간에 수술이 끝남) 3일간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하고(방귀가 없어서) 말 그대로 단식(斷食)을 했던 것이다. 대신 포도당이 든 물 링거액(Ringer solution)으로 탈수(脫水)를 막아 생명을 유지했으니 그 때는 간이나 피하지방에 비축해뒀던 양분을 쓰게 된다. 필자도 수술 후에 약 7㎏이나 체중이 줄었으니 말해서 제 살을 녹여(깎아) 그 동안 생명을 부지(扶支)했던 것이다.

　그런데 온 신경을 마비시켰던 마취약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작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약은 간에서 분해가 일어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약효가 없어지고 만다. 마취약도 간에서 분해되었기에 천천히 깨어 나는 것으로 마취의 정도에 따라서 깨는 속도도 달라진다. 모든 약, 아니 독은 간이 분해를 하는 것이고 때문에 간이 약한 사람은 마취 깨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항생제를 6시간마다 투여하는 이유도 알았다.

[생물이야기 324] 담석은 간, 요석은 콩팥에서 생긴다. (1) : 2000-11-18

　『하는 일에 마(魔·해살)없길 바라지 말고, 몸에 병(病)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병은 가끔 찾아오는 친구요, 시간 따라 생기는 조수(潮水)와 다를 게 없는 것이라 믿고 살아온 터라 필자도 꽤나 병에 미련을 부리는 편이다.

　미련도 미련이거니와 반푼수 집안 망친다고, 명색이 사람 몸의 구석구석을 쉽게 풀이한 「인체기행」이라는 수필집까지 낸 사람이 배가 아프면 무턱대고 위경련이라고 이 약 저약을 먹으면서 30년을 넘게 참고 견디며 지내왔던 것이다. 하여, 이번에는 된통 걸렸으니 다름 아닌 담석증이었다.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만한 담석(膽石· gall stone)두 개를 끄집어 내고 쓸개(담낭)를 자르는 「배째기(할복)」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름대로 20여일 죽을 고생을 하고 되살아 나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병상일기를 겸한 병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씁쓸한 쓸개즙 이야기를….

　사실 옛날 같았으면 필자는 담석통(膽石痛)을 앓다가 죽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속앓이(속병) 중에서 이 담석통 말고도 위경련이나 요석통(尿石痛)은 알아줘야 하는 것들로 걸렸다하면 배를 부여안고 세 칸 방을 헤매야한다. 아픔의 극치를 느끼게 하는 산통(産痛)에 버금가는 것들이다.

　얼마나 아프면 잔디를 두 손으로 쥐어뜯으면서 땅바닥에 뒹굴고 방구석을 헤매면서 벽에다 머리를 처박겠는가. 그러다가는 신통하게도 어느새 아픔이 싹 가라 앉으면서 언제 통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멀쩡해 진다. 위경련인 경우는 위 근육의 쥐(경련)가 풀어진 것이고, 담석통은 쓸개관(담관·膽管)에 끼인 돌(담석)이 내려갔거나 관이 뚫린 것이며 요석통의 경우도 수뇨관(輸尿管)이나 요도(尿道)에 끼었던 요석이 비껴져 내려간 것이다.

　전신이 식은땀으로 푹 젖으면서 태풍후의 고요를 느끼는 기분이니 병이 나을 때의 통쾌함은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재수가 좋아서 이렇게 스쳐 지나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통증이 끊나질 않으니 응급실로 가야하고 더 심하면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생물이야기 323] 신비한 힘을 가진 겨우살이 (5) : 2000-11-11

　지난 회에 설명한 새삼이나 실새삼을 묶어서 영어로는 「dodder」라고 하는데 옥수수의 수염(암꽃)을 닮았다는 뜻이고, 우리말인 「새삼」은 가늘게 삼은 삼(마)을 닮았다는 뜻인 듯하다. 줄기는 철사 같으며 붉은 색이 돌고 예리한 비늘이 나 있어서 줄기에 찰싹 달라붙는다. 덩굴을 갖는 식물은 어느 것이나 줄기에 돌기를 내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을 잘 관찰하면 볼 수가 있다. 돌 담벼락에 끼어 든 뱀을 뒤에서 잡아 당겨도 끌려 나오지 않는 것과 꼭 같은 구조를 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 뱀은 토막이 났으면 났지 끌려 나오지 않는다.

　새삼과 실새삼의 씨앗을 한방에서는 토사자(●絲子)라 하여 약으로 쓴다고 하니 전국적으로 분포하면서 우리와 상당히 가까운 풀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하기야 약으로 쓰지 않는 풀 나무가 어디 있던가. 여태 설명한 겨우살이나 새삼, 실새삼 같은 하찮은 기생식물에서도 병 치료를 위한 여러 가지 약을 얻는데도 인간은 야생동식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약은 합성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생약성분을 이런 내버려진 동식물에서 뽑아 쓰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늦게나마 종다양성(種多樣性)을 인식하고 세계적으로 몹쓸 것으로 버려졌던 여러 동식물을 보존해야겠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잡초가 마냥 잡초가 아니라는 것이다. 품종을 개량하는 데도 토종(양생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요새는 씨 도둑들이 온 세계를 쏘다니고 있고, 우리 나라에만 사는 여러 특산종(特産種)식물을 벌써 오래 전에 몰래 훔쳐가서 개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식물도 남의 몸에 빌붙어서 사는 놈들이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이야기했다. 기생하는 놈이 없는 세상이 일찍이 없었으니,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가 한 통속이고, 하물며 사람들 중에도 쉽게 살아가려는 기생인간들이 들끓고 있지 않는가. 못 배우고 몸이 불편하여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사지가 멀쩡한 녀석들이 기생충이 되어 설치니 부아가 난다. 언제나 제 힘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사는 맑디맑은 밝은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생물이야기 322] 신비한 힘을 가진 겨우살이 (4) : 2000-11-04

　여기서 논하고 있는 겨우살이는 그래도 얌통머리가 있어서 일부 제 앞가림을 하지만 숫제 딴 식물에 붙어사는 전기생(全寄生)하는, 한 마디로 치탈(●奪)에 아주 능한 놈도 있으니 우리 나라에는 새삼(Cuscuta japonica)과 실새삼( C. australis) 두 종이 산다. 이것은 메꽃과(나팔꽃도 여기에 듦)에 드는 식물로 세계적으로는 150종이 넘는다고 하고, 주로 온대지방과 열대지방에 자생(自生)하며, 이놈은 엽록체가 전연 없어서 넝쿨을 기주식물(寄主植物)에 칭칭 감아서 헛뿌리를 숙주식물 줄기에 박아서 통째로 관다발(물관과 체관)에서 물과 양분을 빤다. 잎은 퇴화하여서 아주 작은(2㎜ 정도) 삼각형인 비늘 모양을 하고, 줄기는 철사같이 가늘고 황적색을 나타내며, 드물게 보는 일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왼돌이 식물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는 고등 식물에는 등나무나 다래 등 일부만이 좌선(左旋)을 할뿐인데 새삼과 실새삼도 그렇다. 한데 어찌하여 지구의 동식물은 왼손잡이가 적은 것일까. 이것 또한 아무도 답을 할 수가 없는 자연계의 신비의 한 구석이다.

　그런데 땅바닥에서 발아한 줄기가 처음에는 뿌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일단 이것이 다른 식물의 줄기에 닿아 헛뿌리를 박고 나면 삭아 없어져버린다. 줄기는 끊임없이 자라나가서 기주식물(숙주식물)을 얼기설기 얽어 완전히 덮어버리고 결국에는 어미 식물은 말라죽게 한다.

　새삼과 실새삼은 일년생 식물로 50㎝ 쯤 자라며 7,8월경에 나팔꽃(morning glory) 닮은 흰 꽃을 피우고, 나중에 열매를 맺고 씨가 떨어져서 다음 해 다시 발아한다. 녀석들도 얌체라 딴 식물에 종속(從屬)하는 주제에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는다.

　새삼 실새삼이 기생하는 식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은 토끼풀, 목초의 일종인 알파알파(alfalfa),맥주의 원료가 되는 호프(hop), 콩 등이다. 그리고 아직은 요것만 꼬집어 죽이는 제초제(除草劑)가 없어서 이 드센 놈들이 달라붙으면 손으로 일일이 뜯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생물이야기 321] 신비한 힘을 가진 겨우살이 (3) : 2000-10-28

　겨우살이는 재주가 메주라서, 기생 나무 둥치에 뿌리를 박아 물관에서 물을, 체관에서는 주인식물이 만든 양분을 빨아먹고 산다. 세상에, 그런 주제에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는다.

　말해서 현화식물(顯花植物)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얌통머리는 있는지라 통통한 잎사귀에 엽록체를 듬뿍 가지고 있어서 광합성을 하여 스스로 양분을 만들기도 하니 말해서 반기생(半寄生)식물이라고 하는 것이고, 엽록체는 겨울에도 파괴되지 않으니 일년 내내 녹색을 띠는 상록수(常綠樹,evergreen tree)인 셈이다.

　전에 말한 한계령의 참나무는 이파리를 떨어뜨려 나목(裸木)이 되었으나 그 가지 위의 연초록 「까치집」은 여전히 늘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겨우살이 가지는 분지(分枝)를 하며 노란 색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자웅이가(雌雄異家, 암수 딴 꽃)이고 열매는 살이 많고 안에는 단 한 개의 등적색(橙赤色)의 씨앗을 맺는다.

　사과나 배도 나중에 땅바닥에 떨어져서 씨알이 자라는데 양분이 되자고 그 깊은 살(과육, 果肉)을 만든다. 하지만 겨우살이의 열매 살은 아주 점도(粘度)가 높아 열매를 먹는 새의 부리에 씨앗이 달라붙도록 하고, 열매를 통째로 삼킨 때는 똥이 끈적거려서 결국은 주둥이나 똥구멍을 나뭇가지에 문질러 닦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가지에 묻은 씨앗은 신천지(新天地)를 만난 것이라 거기에서 바로 싹이 새로 트고 기생뿌리(허근, 虛根,haustoria)를 나뭇가지에 박아 또 다른 새 집을 짓는다.

　겨우살이가 많이 기생하면 숙주식물이 양분을 다 빼앗겨서 큰 해를 입고 말라 죽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不問可知)라 하겠다.　허나, 오묘한 것은 숙주가 죽으면 기생생물인 제도 같이 죽는다는 것을 이것들도 다 알고 있는 지라 그런 경우는 드물다.

[생물이야기 320] 신비한 힘을 가진 겨우살이 (2) : 2000-10-21

　겨우살이(「겨우사리」라고도 함)는 세계적으로 850여종이 있고, 우리 나라에는 4종이 살고 있으니, 겨우살이(Viscum album), 참나무겨우살이(Taxillus yadoriki), 동백나무겨우살이(Korthalsella japonica), 꼬리겨우살이(Hyphear tanakae)등이 그것이다. 이들이 기생하는 숙주나무는 밤나무, 참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뽕나무, 후박나무로 나뭇가지에 기생뿌리를 박고 살아간다. 물론 나무에 따라서 기생하는 겨우살이 종류가 따로 정해져 있어서 반드시 정해진 나무에만 기생한다. 사람 몸에 기생하는 회충과 개 뱃속에 사는 회충이 아주 닮아있으나 그것들이 다 다른 종이듯이 모든 숙주와 기생 생물의 짝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것도 자연계에는 순서와 질서, 짜임과 차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도 겨우살이를 「기생하는 나무」즉 기생목(寄生木)이라 불렀고,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다고 동청(凍靑)이라 불렀으며, 특히 한방에서는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상기생(桑寄生)이라 하여 요통, 동맥경화, 동상의 약재로 썼다고 한다. 현대 의학에서도 「겨우살이 요법(mistletoe therapy)」이 유행하여, 이 식물이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식욕을 촉진시켜 암(癌)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고 하여서 목하(目下)한국 산야의 겨우살이가 박살이 나고 있다.

　무엇에 뭐가 좋고 무엇이 뭣에 좋다는 말만 나오면 할퀴고, 잘리고, 찢기는 저 동물과 식물들이 때와 자리(나라)를 잘 못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겨우살이는 항암역할을 하는 물질인 렉틴(lectin), 비스코톡신(viscotoxin), 알카로이드(alkaloid)등의 물질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그놈의 「요법」도 하도 유행을 타는지라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가 잦다. 언제는 길옆의 쇠뜨기가 만병통치약이 되어 씨가 마르더니, 이제는 겨우살이 말고도 엄나무 등이 수난을 당하는 중이며 여느 동식물이 제 죽을 차례가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언제나 사람은 식물에 빌붙어서 먹고사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고, 그것에 들어있는 생약(生藥)을 뽑아서 뭇 병을 치료 해왔다. 너무나 고마운 식물들이다. 밥도 빵도 그들이 준 것이 아닌가.

[생물이야기 319] 신비한 힘을 가진 겨우살이 (1) : 2000-10-14

　「겨우살이」하면 엄동설한을 이겨 겨울을 넘긴다는 월동, 즉 「겨울살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간다는 뜻이 있다. 그런데 식물(나무)중에는 딴 큰 나무 가지에 둥지를틀어 근근이 살아가는, 일부는 제가 양분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숙주(宿主)식물의 줄기에 뿌리를 깊게 박아 수액(樹液)을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반기생식물(半寄生植物)이 있으니 식물학자들은 그 나무를 「겨우살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주 적절한 이름으로 우리 나라에 사는 동식물의 이름을 살펴 따져보면 해학적이고 문학성이 그득 들어있으며 또 그 속에는 역사성도 들어있는 경우가 있어서 아주 흥미를 끈다.

　「짚신벌레」 하나만 해도 그렇다. 그 단세포동물(單細胞動物)의 꼴이 망혜(芒鞋, 짚신)를 닮아 붙인 이름인데 서양 사람들이 짤짤이 모양을 한다고 하여 「slipper shaped」라는 말을 붙인 것과 유사하지만 거기에 문화의 차이가 배어 있다. 아마 지금의 분류학자가 이름을 붙였다면 「구두벌레」라거나 「운동화벌레」등으로 명명(命名)했을 터이니 거기에 역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찌들어진 역사지만 그 또한 역사이니까.

　길섶에서 흔하게 보는 1년 초, 덩굴성 식물로 줄기나 이파리에 작은 가시가 많이 붙어있는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 있다. 어디 감히 그것으로 밑씻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헌데,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저것으로 밑을 닦으면 얼마나 아플까 라는 생각 즉 얄궂게도 며느리에 대한 좋지 못한 반감이 스며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낙엽이 다 진 늦가을 원통을 지나 가파른 한계령 꼭대기에 다다를 즈음, 오른 쪽 계곡이나 등성이에 즐비한 고목 참나무 가지마다 까치집이 아닌가 하고 착각 할 정도로 그것을 빼 닮은 겨우살이 뭉치가 눈앞에 꽉 차 들어온다. 「나무 위의 나무」를 아는 사람은 저것이 서양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마력(魔力)을 가졌다고 믿어서 문지방에 걸어놓고 행운을 빌며 또 「kissing under the mistletoe」라 하여 그 아래에 서있는 소녀에게는 누구나 입맞춤을 하고 청혼(請婚)을 한다는 그 겨우살이 나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생물이야기 318]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9) : 2000-10-07

　여기에서 우리는 쌍둥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란성 쌍생아(一卵性雙生兒, identical twins)는 한 개의 수정된 난자가 난할(卵割)중에 아메바나 짚신벌레가 이분법으로 잘라지듯이 갈라져서 생긴 것이고, 이란성쌍생아(二卵性雙生兒, fraternal twins)는 두 개의 난자가 각각 수정하여 성과 얼굴 모양도 다르게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의 체세포에는 완전한 개체가 될 염색체(유전물질, DNA)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사람의 수정란이 난할을 시작하여 두 개의 세포(할구-割球)가 되었을 때 어떤 이유로(아무도 그걸 모른다.)그것들이 따로 떨어져(separation)그대로 복제된 것처럼 성(sex)이나 얼굴까지 닮아 나온다. 이 성질을 시험관에 옮겨서, 만일에 사람의 수정란을 8세포기 까지 배양하고 그것을 하나 하나 분리하여 대리모에 키우면 똑같은 아이가 여덟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도 유전적으로 좋은 소를 골라 체외수정을 시켜서 시험관에서 배양하여 여러 개의 할구(세포)를 분리하고 대리모(代理母, surrogate mother)에 따로 넣어서 여러 마리의 송아지를 얻고 있는데 이것은 새끼끼리 닮은 것이지 어미와 닮은 복제 새끼는 아니다.

　그런데 양지가 있으면 반드시 음지가 있는 법이라, 만일에 이 복제기술을 사람에 적용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가장 두려운 일은 부부(夫婦)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으로 아비나 어미의 체세포를 가지고 어미의 자궁에 키울 수 있게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사실 유독 인간만이 육정(肉情, sex)이라는 것이 부부의 끈을 맺는 수단이 되는 것이라 만일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기본적인 가족이나 사회의 구조가 몽땅 뒤흔들리고 만다. 결혼은 하기 싫고 아이는 키우고 싶다는 여성의 구미(口味)를 채워주기에 십상팔구(十常八九)다.

　한 마디로 과학자는 미지의 세계를 만나면 사족을 못 쓰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종교나 사회전체의 안전판이 있기에 복제인간 이야기는 너무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과학은 앞으로만 갈 줄 아는 속성이 있음을 알아둬도 좋을 듯.

[생물이야기 317]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8) : 2000-09-30

　그런데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시험관아기는 물론이고 복제(cloning이라 한다.)기술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어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한 예로 서울대 황우석교수 팀이 복제 젖소(영롱이)에 이어서 복제 한우(韓牛, 진이)도 탄생시키고 있다. 영롱이는 자궁세포의 핵을 떼어서 핵을 제거한 난자에 넣었고(돌리를 만든 기술과 비슷하다)진이는 980㎏이나되는 슈퍼 황소의 귀(耳)의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여 얻었다고 한다. 독자들은 진이는 수송아지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냈을 것으로 아는데 암소의 귀 세포라면 암컷이 태어난다. 만일에 필자의 체세포를 썼다면 당연히 필자를 닮은 남자아이요, 내처의 것은 어느 세포를 썼었더라도 여자로서 처를 빼 닮은 복제아이가 나올 것이다. 체세포 하나에는 모든 유전자(염색체)를 다 가지고 있기에.

　과학도 국력에 비례하는 것이라 우리도 만만하게 볼 수가 없는 나라라는 것을 이런 체세포 복제기술(cloning technique) 하나에서도 느껴야 한다. 알고 보면 모두가 교육과 돈의 힘인 것이다.

　한데, 만일에 이 기술을 사람에 대입한다면 특수한 재질을 가진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나 예술가, 운동선수의 체세포에서 핵을 떼어서 미수정란에 집어넣어 대리모에 키우는 복제인간(copied baby)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세찬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고 복제에 사용한 어미 아비세포가 얼마나 늙었느냐는 것도 문제이며(어느 세포나 일정한 나이 시계를 갖는다) 아비를 닮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등 많은 논쟁이 있으나 이 분야의 연구는 쉼 없이 달려갈 것이다.

　그런데 본문 중에서도 잠깐 언급이 있었지만 한 예로 히틀러의 유전인자를 이용하여 「복제 히틀러」를 만들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복제 양 돌리는 여섯 살 먹은(늙은)어미의 세포에서 복제된 놈이라 이미 염색체의 일부가 많이 마모되어 있어서 얼마 이상 닳아빠지면 세포는 죽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도 죽어버리는 것이니 「복제 히틀러」는 수명이 아주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런 복제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안심을 해도 될 성 싶다.

[생물이야기 316]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7) : 2000-09-23

　수명까지도 유전자(DNA)가 지배를 한다. 하여, 그 뒤에 돌리의 염색체를 분석해본 결과, 여섯 살 된 어미의 세포를 쓴 탓에 이미 염색체의 끝 부분 DNA인 말단부(telomere)가 많이 짧아져 있었고, 때문에 얼마 오래 살지 못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돌리가 태어났을 때 한쪽에서는 그때 사용한 체세포는 젖꼭지 세포가 아니라 돌리 어미가 전에 임신했을 때 피 속에 남아 있었던 언니의 태아세포(胎兒細胞)일 가능성이 있다고 반론을 펴기도 했으나 DNA 분석(genetic test)으로 젖샘 세포가 확실한 것임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돌리를 성공시킨 윌멋은 나중에 9일된 양의 배(胚, embryo) 세포(체세포)를 떼 내어서 동일한 조작법으로 또 다른 복제양(複製羊)을 얻었다고도 한다. 배의 세포는 분열이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 훨씬 성공률이 높고 여러 동물에서도 이제는 흔하게 성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유사한 예로는 젖샘 세포 대신 쥐의 난소(卵巢, ovary) 둘레를 싸고 있는 성장(활동)을 정지한 체세포인 난구(卵丘) 세포(cumulus cell)의 핵을 사용하여 돌리를 만들 듯이 하여 쥐의 복제를 성공하였다.

　그런데 보통 사람 세포는 50회 정도 분열하면 염색체의 끝 부분에 있는 DNA 말단부(telomere)가 구두끈이 닳아빠지듯 하여 세포분열을 정지한다. (「Hayflick limit」라고 부른다.) 이렇게 세포는 분열의 횟수가 한정되어 있는 것인데 그 늙은 세포를 텔로메라제(telomerase)라는 효소로 자극하였더니 20회나 더 분열을 하였다고 하며, 암(癌) 세포는 이 효소를 가지고 있어서 끊임없이 분열을 계속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한창 발생 중인 태아의 간(幹)세포(stem cell)에서 이 효소를 얻어서 병든 조직이나 기관에 주사주어서 영생(永生)케 하겠다는 생각을 과학자들은 가지고 있다. 참고로 사람은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일평생 보통 10¹● 번 분열을 하는데, 성인이 되는데는 10¹⁴번(100조개)분열하고 나머지는 모두가 세포의 재생에 쓰이는 것이니 계산을 해보면 세포를 새로 만들어 내는데 얼마나 많은 양분이 쓰이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게 안되면 죽음이 찾아드는 것이다. 왜 자꾸 먹어야하는지를 이제야 알겠다.

[생물이야기 315]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6) : 2000-09-16

　돌리는 어미의 젖샘(유선-乳腺)세포에서 복제된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젖가슴이 큰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컨트리음악 가수 돌리 파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야! 과학자들도 해학성을 가지고 있다! 실은 그들은 모두가 괴짜들이다. 남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니까.

　다음은 돌리를 탄생시킨 실험의 일부를 아주 간략히 보도록 한다. 6년생 어미 양의 세포분열이 매우 왕성한 젖꼭지(udder)에서 ①세포(체세포임)를 떼 내어서 일주일을 굶겨 세포분열을 정지시킨 다음 핵을 떼 내고, ②그것을 핵을 없애버린 미수정란 가까이 갖다 놓고, ③약한 전기를 단속적으로 통하고(정자가 난자를 뚫을때의 자극을 전기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세포 속으로 핵이 들어감) ④세포분열을 촉진시키는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⑤일주일 후에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着床)시킨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놈이 바로 이 돌리며, 성공률은 1~2%로 물경 277번째 시도한 놈이 기적적으로 탄생한 것이니 그 과정에 시행착오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결과가 복음(福音)이 될지 아니면 재앙(災殃)이 될지는 생각에 따라 다 다르고 계속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앞의 간단히 기술한 실험과정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독자들도 단방에 발견하였을 것이다. 「일주일을 굶기고」 또 「일주일후에」라는 대목이 눈을 끌었을 줄 아는데 이 일주일이 바로 창세기에 걸린 시간이요 우리의 삶의 단위를 일주일로 끊어 놓은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어쨌거나 이런 과학의 기념비적인 성공을 있게 한 월머트(Ian Wilmut)박사는 이 업적으로 온 세상의 각광(脚光)을 받기에 이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돌리가 아비 데이비드와 짝짓기를 하여 정상적으로 임신을 하여서 새끼 보니(Bonnie)를 낳았고 같은 두 어미 아비 사이에서 두 배 째로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는 하는데 과연 이 돌리는 건강과 수명이 정상으로 태어난 또래들과 어떤 차이를 보일까가 독자들도 아주 궁금할 것이다.

[생물이야기 313]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4) : 2000-08-26

　이제는 자기가 발견한 유전자에 특허를 붙이는 일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보통 수천 개의 DNA 염기(A,T,G,C)가 한 개의 유전자가 되는 것이라 DNA 조각 하나에서 돈이 쏟아지는 일이 벌어질 판이다. 또 핵산(염기)분석 기술이 발달하여서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정액(흔적)과 클린턴의 피의 DNA를 분석하여 그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판명하는 정도는 여반장(如反掌)이요, 식은 죽 먹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머지않아서 생명보험 회사가 개인의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에 따라서(유전자를 보고 건강도를 알아내어) 보험료를 차등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 옛날 미국과 독일에서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라는 이름으로 열성인자를 가진 사람을 거세(去勢) 시켰던 비 인륜적인 일이 금세기에 와서도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일 말고도 앞으로는 아이의 용모, 지능, 키도 마음대로 시루떡 자르듯 「재단한 아이(designed baby)」를 만들게도 할수가 있고, 태아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미리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법(gene therapy)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칼날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이 핵산 이야기는 오래 전 1944년 에서부터 시작한다. 유전물질은 단백질이 아니고 핵산(DNA)이라는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래 핵산 연구는 가속이 붙어서 1953년에 미국의 생화학자 왓슨과 영국의 생물리학자 크릭이 DNA는 유전물질이며, 이중나선구조(二重螺旋構造, double helix structure)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까지 이어지고, 그리하여 1963년에 그들은 노벨상을 받았고 생명의 본질(성)이 들어있는 핵산 DNA가 아데닌(A), 씨토신(C), 티민(T), 구아닌(G)이라는 오직 네 글자(염기)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글은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백과사전이 되는데)

　앞에서도 이것에 대한 연구가 어떤 것인가를 암시적으로 언급하였지만 미국의 신참 군인들은 1992년부터 이미 목에 군번을 달기도 하지만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여 개인마다 피와 조직을 떼어서 핵산 분석을 한 「유전자 군번(genetic dog tag)」을 준비해 뒀다고 한다.

[생물이야기 312]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3) : 2000-08-19

　우리 몸의 모든 단백질은 DNA의 명령을 따른다. 그런데 사람의 DNA 중에서 97%(일설은 85~90%)는 단백질을 만드는데 관여하지 않는 것이고 3%만이 직접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라서 그것의 암호(暗號)만 해독하면 되는 것이라 하여서 돈을 절약하고 시기를 훨씬 단축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어왔고, 실제로 미국의 벤터(Craig Venter)가 그렇게 하여 2000년초에 인간게놈계획을 앞당겨 거의 완성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게 하는 가장 흔한 병은 20여 가진데 거기에 관계하는 유전자는 10여 만개 중에서 겨우 200개에 지나지 않아서 그것만 골라서 분석하고 염기서열을 알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 연구(계획)는 생명의 본질을 알고자하는 것인데 돈을 적게 들이면서 빨리 DNA 염기 순서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앞에서 말한 벤터는 자동으로 염기 순서를 찾는 기계(automated gene sequencer)를 만들어서 더 빠른 암호 풀이를 하게 하였으니 때문에 이 사람은 유전자 「사냥꾼(gene hunter)」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DNA분석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그는 이미 위염을 일으키는 세균(Helicobacter pylori), 매독균(syphilis), 유행성뇌염(Haemophilus influenzae)등의 유전자 지도(DNA 염기 배열순서)를 밝혀 놓고 있다. 아마도 이 원고가 신문에 나갈 즈음이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필자도 가늠하기 어렵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과학세계라서 하는 말이다.

　근래는 전체 몸의 길이가 1㎜,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모두 합쳐서 959개밖에 안되는 선충(線蟲, nematoda)의 일종인 Caenorhabditis elegans라는 벌레의 유전자를 모두 해독(解讀)했다고 하는데, 이 선충의 유전인자는 1만9,099개이고 이것을 구성하는 DNA 염기쌍은 모두가 9,700만개인데 이 염기의 순서를 모두 알아내었다는 것이다. 이 선충은 전체 유전자의 약 40%가 사람의 유전자와 같다고 하니 「미물」과 「만물의 영장」이 그리 다르지 않다.

[생물이야기 311]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2) : 2000-08-12

　근래 신문에 많이 소개된 것으로 제일 먼저 「생물의 번호부(biological book)」 또는 「인간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는 인간게놈계획(Human Genome Project)을 보도록 하자.

　게놈이란 신(神)의 손때가 묻어있는 어떤 한 생물체가 갖는 유전자 전체를 일컫는 말이고, 이 계획은 쉽게 말해서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의 순서를 밝히는 것으로 다른 말로 사람의 유전자 지도(gene map)를 만드는 것이며, 10여 만개(잘 몰라서 5만 내지 8만개라고도 한다)의 유전자인자가 어느 염색체(染色體)의 어떤 부위에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유전자는 DNA 염기를 말하는 것이며 딴 말로는 DNA 염기쌍(鹽基雙, base pair)의 배열순서(번호)를 일일이 알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소련과의 우주경쟁을 하면서 달나라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 세웠던 미국의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대단한 사업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게놈(genome)이라는 말은 유전자(gene)의 앞(gen)과 염색체(chromosome)의 뒤(ome)를 합쳐 만든 합성어고, 어떤 신문은 미국 발음을 그대로 따서 「지놈」으로 쓰기도 한다.

　사람에게 각 생식세포(난자와 정자)에 들어있는 염색체(23개씩)을 구성하는 염기쌍(A-T, G-C)(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씨토신)은 모두가 대략 30억개가 되는데 그것의 배열 순서를 하나하나 밝히는 것이 이 계획인 것이고(사람 염색체는 모두 46개이나 짝을 이루는 상동염색체 중에서 그것의 반, 23개만 알면 된다), 묘하게도 이 계획에 드는 돈이 30억 불($)이었다고 한다.

　원래 이 계획은 1990년에 시작하여 2005년에 끝내게 되어있는데(불행하게도 우리 나라는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2000년에 거의 다 밝힘), 비유하여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의 모든 골짜기, 언덕은 물론이고 거기에 나있는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까지 모두 기록하는 것 만큼이나 긴 시간과 많은 돈이 드는 계획이다.

　즉, 신(창조주)의 작품에 감히 손을 대는 일로 생명물질의 본적(뿌리)을 모두 훑어보겠다는 원숭이는 못하는 인간의 야심 가득 찬 계획이다.

[생물이야기 310] 인간게놈계획과 복제인간 (1) : 2000-08-05

　사람과 원숭이가 가지를 친 것이(사람이 원숭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같은 조상에서 원숭이와 사람이 나눠졌다는 것임) 약 500만년 전인데 그 동안에 서로 달라진 DNA(데옥시리보 핵산) 염기(鹽基)는 2% 미만이라고 하니 이것은 남녀의 유전자 차이가 1%인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만큼 달라진 것이라고 보겠다. 그러나 그들과 사람은 머나먼 거리(차이)를 두게 되었으니, 20세기의 「정보기술(infotechnology)」과 21세기의 「생물기술(biotechnology)」이 접목(接木)을 하여서 말 그대로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토플러 같은 미래 학자는 이런 디지털혁명과 생물혁명이 융합(fusion)하여 일으키는 변화를 「제4 물결」이란 표현을 했을 정도다. 특히 핵산(核酸)의 발전 기술(연구)은 과학의 도를 넘어서 「생명(life)」 그 자체에 도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니 쉘리(Shelly)가 쓴 괴기 소설의 주인공인 「프란켄스타인 괴물(Frankenstein's monster)」을 연상케 한다. 결국은 우리도 자기가 만들어낸 「저주의 씨앗」 때문에 제 목숨을 빼앗기는 그런 꼴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과학이라는 괴물에 말이다.

　그런데 바로 앞글에서 남자와 여자의 유전자(DNA)가 1% 정도가 다르다는 말이 나왔다. 맞는 말로, 때문에 남녀가 평등할 수는 있지만 동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이 유전자(遺傳子)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튼 독일의 분자생물학자 로버트 후버 교수는 『현대의 자연과학자는 중세기 시대때 보물섬을 찾아 바다를 누볐던 해상모험가처럼 신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아직도 자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서 수많은 실험을 하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나, 인간 복제는 윤리적으로 대단히 위험하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과학자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언제나 잘 쓰면 인류에 보탬이 되나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되고 큰 해악을 미치는 법이다. 때문에 「다이너마트의 지혜」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금 세계의 생물학 연구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생물이야기 309] 사람몸의 방어체계 (6) : 2000-07-29

　그런데 더 놀랄 일이 있으니 임신한 어머니와 태아 사이에도 다툼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태아가 적게 먹어서 작게 태어났으면 하나 태아녀석은 엄마의 건강은 아랑곳 않고 뼈를 녹이고 살을 뽑아가니 어머니는 고혈압에 걸리고 당뇨도 생기며 영양결핍이 되기도 한다.

　어미로 하여금 입덧을 나게 한 것도 바로 이런 관계로 설명이 된다. 표현이 무정하고 잔인한 느낌이 들지만 어머니는 숙주, 태아는 기생충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기생충이 숙주의 행동을 바꾸는 한 예로 입덧을 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람이 잘 먹게 되어서 수렵생활을 할 때에는 없었던 병이 새로 생겨나니 동맥경화가 그렇고 유방암등의 몹쓸 것이 그것이다. 환경의 변화와 생활 방식의 차이는 여성들의 생리 횟수까지 바꿔주니 수렵시대에는 한 평생 평균 150회였던 것이 현대는 400회를 넘긴다고 한다. 바로 「진화」의 개념이 도입된 「다윈 의학」적 해석인 것이다.

　한데, 약은 언제나 독이 되는 것이고 또 따뜻한 양지를 만드는 태양은 어두운 응달이라는 그림자를 만들어 내듯이, 사람의 몸에 이로운 것이 있으면 한편으로 반드시 해를 끼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종의 보상현상으로 해로운 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제(抗酸化劑, antioxidant)는 노화를 방지하는 일을 하지만, 반면에 수명을 늘려주는 일을 하는 요산(尿酸, uric acid)을 결정(結晶)으로 만들어버려서 그것을 관절에 쌓이게 하니 그것이 통풍(痛風)이라는 것이다.

　또한 여러 항체(抗體)는 강한 면역현상으로 병원균의 침입과 감염을 막으나 한 편으로는 자기조직을 다치게 하는 류머티즘을 일으키게 하고, 맹장염을 일으키는 막창자(맹장)의 꼬리 부위인 충수(蟲垂, appendix)가 너무 작으면 피가 통하지 않아서 염증이 생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제법 큰 새끼손가락 크기로 남겨두는 것도 양면성인 것이고 그것이 모두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끝까지 퇴화시켜 버리지 않고 두는 것을 보면 그것도 항체를 만드는 면역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새는 복부수술을 해도 억지로 떼 내버리지 않는다.

[생물이야기 308] 사람몸의 방어체계 (5) : 2000-07-22

　사람도 살아있는 동안에 사람끼리도 그렇지만 여러 생물과 다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두려움이란 어떤 반응이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송사리의 일종인 열대어 거피(guppy)로 한 실험이 있다. 그놈들도 유전인자가 서로 달라서 겁쟁이가 있는가 하면 용감무쌍한놈이 있고 중간 정도의 것도 있다. 커다란 수조에다 이들을 모두들 섞어 넣고 포식자인 물고기 배스(bass)여러 마리 풀어놓아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헤아려보니, 용감한 녀석들은 모두 잡혀먹히고 중간 것이 15％, 겁쟁이는 40％나 살아 남았더라고 한다. 그러니 세상사에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응급실이나 감옥에 가 있거나 실직자 뒷줄에 서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의를 보고도 피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라는 뜻은 아니나, 공포를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은 생존에 아주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항생제가 좋은 것이 나오고 면역 백신이 만들어 진다해도 병원균을 완전히 제어할 수가 없다. 그들은 사람보다 번식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돌연변이도 많이 일어나서 내성균(耐性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세균들도 숙주(宿主, host)와 오래 지내게 되면 이상하게도 악성(惡性)이였던 것들이 양성(良性)으로 바뀐다는 것인데 AIDS 바이러스(HIV)만 해도 그런 경향성을 띠기 시작하여 이제는 사람이 일종의 면역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병원균의 적응현상으로 숙주(宿主, host)를 죽이면 제도 따라서 죽고 새 임자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그것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자연선택 현상인 것인데, 알고 보면 사람이 가장 두려워할 대상은 세균도 바이러스도 독사, 범도 아니고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이다. 영역을 많이 확보하여서 고기(meat)를 많이 얻고 그리하여 씨를 많이 퍼뜨리기(mate) 위해서 전쟁을 벌이니 그 전쟁은 반드시 젊은이들끼리 한다는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동 서해 바다의 물고기도 한국과 일본, 중국이 더 잡아먹겠다고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생물이야기 307] 사람몸의 방어체계 (4) : 2000-07-15

　몸에서 생기는 열이나 콧물 등과 같은 것은 모두가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반응이라는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어찌하여 여자들이 임신(姙娠)을 하고 나면 입덧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메스꺼워 구역질을 하고 오심구토(惡心嘔吐)로 그 고생을 하는 것일까.

　이를 삼신 할머니의 시기 질투라고 해야하는가. 아니면 이것도 원죄를 사하는 것인가.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아기를 가지면 모두 입덧을 하는데 이것 또한 태아(胎兒, fetus)를 보호하는 긴요한 생리현상인 것이다.

　임신 삼 개월까지는 태아의 조직 발생이 가장 활발할 때라서 이때 만일에 산모가 게걸스럽게 아무 거나 먹다보면 음식에 묻어(들어) 있는 독(毒, toxin)성분이 들어와서 태아에 해를 끼쳐서 기형아나 유산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독에는 여러가지가 있어서 곰팡이, 세균의 독에다 음식 지체가 갖는 독이 있고, 요새 같으면 과일에 묻은 농약, 제초제 등 기피해야 할 것이 끝없이 많다. 역시 몸에서 일으키는 여러 일들이 모두 필요불가결(必要不可缺)한 반응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 입덧이 심하면 심할수록 유산 확률이 적고 튼튼한 아이를 낳는다는 통계도 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음식만 봐도 구역질이 나더라는 필자의 큰 딸애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 어찌 오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입맛은 변하여 신 것이 먹고싶어지고, 왜 신 것이 먹고 싶어지는 가도풀어야할 의문으로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몰라도 그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음식을 잘 못 먹거나 상한 것을 먹었을 때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하는 토사곽란(吐瀉●亂)만 해도 병균이나 그 균이 분비한 독소를 씻어낸다는 점에서 역시 몸을 돕는 행위인 것이다.

　설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설사를 멈추게 하는 진짜 지사제(止瀉劑)를 먹인 경우와 밀가루와 같은 가짜 약인 위약(僞藥, Placebo라 한다)을 먹였을 때 전자의 사람이 훨씬 설사를 일으키게 하는 Shigella 세균이 오래 몸을 머물더라고 한다.

　지사제를 먹느니 설사를 하는 것이 몸에 좋다는 말이다. 약이란 치료제라기보다는 보조제인 것이다.

[생물이야기 306] 사람몸의 방어체계 (3) : 2000-07-08

　지난회의 열 이야기(고열은 병원균을 맥 못 추게 한다)에 이어서 체온이 오르면 간에서 철분(Fe)을 압류(회수)하여 버린다. 이 철분은 세균의 생육에 필수적인 것이라 혈액에 철분이 부족하게 되면 종국적으로 세균이 죽고 번식을 억제당하는 것이니 열(fever)이란 얼마나 기막힌 몸의 방어장치인가. 고열에 암 세포도 힘을 못 쓴다고 하여 열치료(熱治療)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냉혈동물인 도마뱀도 병균에 감염되면 따뜻한 곳으로 기어가서 체온을 올린다고 하지 않는가. 쥐도 같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우리도 감기에 걸리면 뜨끈한 국물 한 사발 들이마시고 이불 푹 둘러쓰고 땀을 흘렸는데 신통하게도 거기에도 이런 과학(의학)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병에 걸리지 않고는 살수가 없다. 그래서 감기 정도는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라 생각하고 지내면 되련만 사람들은 죽을 병이나 걸린 것처럼 약을 사먹고 주사를 맞는 등 온갖 수선을 다 떨고 야단법석을 떤다. 감기는 누구나 평생 300여 번을 걸린다고 하니, 사실 병이 조수(潮水)나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조수가 없는 세상은 곧 달이 없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니 병 없이 살려는 그 자체가 큰 병인 것이다.

　제 몸의 자가치유능력(自家治癒能力)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어찌 남을 믿을 수 있겠는가. 자가치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몸의 핏속에는 여러 종류의 백혈구가 있어서 병원균이 들어오자마자 달려들어 그것들을 잡아먹고, 백혈구를 피해 도망 간 녀석들은 수많은 항체(抗體)가 병균의 뒷다리를 걸고넘어지고, 자폭(自爆), 동반자살(同伴自殺)등의 방법으로 병균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이로운 일임)콧물도 흘리게 된다. 콧물을 그치게 하는 약을 사서 먹어 버린다? 아니다. 콧물을 흘리는 것도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콧물(점액)로 세포에 달라붙는 감기 바이러스나 2차 감염을 일으킨 세균을 씻어내는 현상이 아니던가. 그래서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流水不腐) 이 콧물도 정녕 흘러야 병이 빨리 낫는다.

[생물이야기 305] 사람몸의 방어체계 (2) : 2000-07-01

　사람의 몸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진화에 따라 방어체계도 새로이 변하고 적응을 해나가는데 묘하게도 그 결과 어떤 하나가 몸에 이로우면 반드시 일면 해를 주는 보상적(補償)인 면이 있다고 한다. 이런 해석이 곧 「다윈 의학」식인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실제로 우리 몸을 다른 생물처럼 객관적으로 보고 그 생리나 원리를 이해해 가면 거기에서 장수 비법도 발굴해 낼 수가 있다.

　어머니 손은 약손이요 눈은 체온계라서 자식의 이마를 만져도, 아니 아이의 눈매만 봐도 단방에 열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열이 난다는 것은 곧 몸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화농균(化膿菌)이 침입하여 어딘가에 염증이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열의 유무를 알아내는 중추는 간뇌(間腦)의 아래에 있는 시상하부(視床下部, hypothalamus)인데 이곳은 방벽에 붙어 있는 보일러의 온도조절기(thermostat)역할을 하는 것으로 건강할 때는 우리의 체온을 정상 온도인 36.5℃로 일정하게 유지케 하나 몸에 병원균이 침입하면 백혈구가 그놈들을 잡아먹으면서(식균작용) 잽싸게 발열물질(發熱物質)인 파이로젠(pyrogen)이라는 (단백질인 일종) 신호물질을 분비하고 이것은 피를 타고 시상하부에 가서 「병균의 침입」 사실을 알리며 따라서 시상하부는 온도조절기의 눈금을 돌려서 체온을 올려 버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체온이 상승하는 것은 사람 몸에 이로운 생리현상(반응)일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열이 나면 사람도 노곤해져서 기력(氣力)을 잃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microbes)도 맥을 못추게 되는 것이니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은 미열 정도는 해열제를 먹지 말고 그냥 견뎌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열은 뇌 세포를 다치게 하기에 어린이나 노약자는 반드시 빠른 조치를 해야한다.

　특히 어린이가 그렇다. 옛날에는 고열을 내는 장티푸스 같은 괴질(怪疾)에 걸리면 해열제가 없어서, 일단 나아 살아나더라도 뇌 세포가 망가져서 지능이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나 반면에 다른 병균들이 다 죽어서 몸 하나는 더욱 건강해진다.

[생물이야기 304] 사람몸의 방어체계 (1) : 2000-06-24

　생물의 진화는 「시계의 화살표」 방향으로만 일어난다고 하니 쉽게 말하면 진화는 절대로 뒷걸음 질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앞으로만 진행한다는데 어쩌면 무소 같은 과학자들의 습성과 사뭇 닮았다하겠다. 그래서 유전학자 도브잔스키(T. Dobzhansky)같은 이는 『「진화」를 빼고 나면 생물학은 의미가 없다』라고 갈파 할 정도다.

　그래서 다윈의 「자연 선택설(도태설, natural selection)」은 사람을 다루는 응용 과학인 의학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 「다윈 의학(Darwin medicine)」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붙이고, 의학도 순수 생물학적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주장이 세차게 나오고 있다. 다윈 의학은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적으로 사람(인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인체가 암에 걸리게끔 되어있고, 어째서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가, 과연 막창자(충수)를 잘라버려도 되는가 등 좀 넓고 먼 곳에서 병의 원인에 접근하는 그런 의학인 셈이다.

　몸에 염증이 있으면 어이하여 몸이 아프고 열이 나며,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흐르고 기침을 하며, 임신 끝에 입덧을 심하게 하는 것일까. 또 걸렸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던 성병의 하나인 임질(淋疾, gonorrhea) 매독(梅毒, syphilis)은 세월에 쓸려 그 위력을 잃어가고, 사냥이나 해서 먹고살던 원시시대에는 없었던 갖가지 새로운 병들이 생겨나는 것이며, 빈혈을 일으키는 겸상적혈구증(鎌狀赤血球症, sickle-cell anemia)에 걸린 사람은 말라리아(학질)에 걸리지 않는 것일까. 팔뚝 뼈가 지금보다 세배가 되면 절대로 부러지지 않을 터인데 왜 이렇게 밖에 굵지 않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정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쌔고 쌨다.

　의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보통 사람이 잘 모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소개한다.

　1.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1.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1. 나의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꼭 지켜야할 아름다운 덕목들이다.

[생물이야기 303] 인체는 기생충 투성이다 (6) : 2000-06-17

　기생충 이야기를 써온 김에 직접 몸에 붙어살지는 않지만 가끔씩 들러서 우리를 괴롭히는 곤충하나만 더 보겠는데, 아직은 덜하지만 머지 않아 우리는 이 곤충(모기)과 일대 결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모기가 사람차별을 해서 같이 자는 집사람한테는 가지 않고 내만 물어대니 이건 웬일인가, 집사람 왈, 「당신 몸에 열이 많아서」 그렇단다. 맞는 말이다.

　모기는 「피 냄새」를 맡고 온다는 말은 멀쩡한 거짓말이고 피 대신 「사람 냄새」를 알고 온다고 하면 말이 된다.

　사람 냄새는 여러가지 때문이니 땀에 들어있는 유기산, 지방산, 요소와 숨 쉴 때 나오는 습기, 이산화탄소, 술 냄새, 체온열 등 복합인자를 말하고 이것들이 모기를 끈다.

　이런 화학물질 쪽으로 동물이 이동하는 현상을 양성(+) 주화성(走化性)이라 하는데 얼굴에 바른 화장품 냄새도 좋은 자극이 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름밤에 「모기향」을 어디다, 어떻게 놓으면 모기만 쫓고 사람은 그 해로운 연기에서 무사할 수가 있을까. 모기향이나 「매트」 등에 든 성분은 모두가 국화과 식물인 제충국(除蟲菊) 무리에서 뽑은 물질로 사람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아주 해로운 것이다.

　그 냄새에 그 독한 모기가 도망을 가고, 그놈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물질이 어찌 사람에겐 무해할 수가 있겠는가. 특히 어린아이들은 조심해야하고, 분무기(깡통)에 들어있는 「약」이라는 것이 더 해롭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직방에 모기나 파리가 죽어 나자빠지는 겁나는 「독」임을 독자들은 잘 안다.

　모기향(독)을 피울 때는 불이 나지 않게끔 큰그릇에 꼽아 세워서, 책상(코) 밑에 놓지 말고 저 위 천장 쪽 책장이나 장롱 위에 얹어 두면 된다. 모기는 절대로 문 아래로 들어오지 않고 위로 날아든다. 데워진(가벼워진) 연기처럼 열 받은 사람 냄새도 대류(對流)의 원리를 따라서 방(창)을 솔솔 흘러 나가고(찬 공기는 아래로 들어오고) 모기는 그 냄새를 맡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놈의 생태를 알면 이렇게 쉽게 방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곧 과학의 생활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물이야기 302] 피부에 붙어있는 세균 : 2000-06-10

　직접 사람 몸에 붙어살지는 않지만 방바닥이나 이불에는 먼지진드기(dust mite)가 엄청나게 많이 있으니 이놈들은 사람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는 비늘 때(skin cell)를 먹고산다.

　끊임없이 상피세포는 죽어나가는 것이니 이 진드기는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재수 좋은 생물이다. 매일 쓸어도 방바닥에선 먼지가 나오니 무슨 먼지가 이렇게 나오느냐고 불평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살갗 세포(상피세포)가 늙어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녀석들이 공기에 쓸려서 숨관(기도)으로 들어가서 천식(喘息,asthma)을 일으키니 이것에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절지동물(節肢動物) 이야기였는데 곰팡이(fungus)도 제법 우리를 괴롭힌다. 비강진(粃糠疹)이라는 피부병을 일으키는 것이 Malassezia furfur 라는 놈이고, 습기를 좋아하는 무좀균은 Trichophyton mentagrophytes, 살갗이나 머리에 생기는 백선균(白癬,ringworm)은 Microsporum gypseum 으로 곰팡이성 질병도 그 수를 헤기 어렵다.

　여기에다 세균과 바이러스 이야기를 더하면 정말로 기생충은 한도 끝도 없다. 한데, 하나 특별히 덧붙이면 세균하면 모두가 병원균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 피부에 붙어 살고있는 대부분의 세균은 다른 병원성 세균의 침투(입)를 막아주는 유익한 공생세균(共生細菌)이라는 것이다.

　딴 유해한 세균이나 곰팡이가 피부에 달라붙으면 단방에 항생제를 분비하여 죽이거나 쫓아버린다. 그러니 때를 벗기는 것은 물론이고 비누를 과용하는 것은 유익한 내 세균을 몰아내는 우매한 짓임을 알면 좋다. >

　더 이야기하면 샤워도 너무자주 하는 것은 피부에 해롭고 하더라도 비누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애석하게도 필자의 말을 믿지 않는 독자들이 태반이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인간 피부 생태계( skin ecosystem)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은 느꼈을 것이고 살아 있어도 이렇게 달려드는데 죽은 시체에는 대번에 악머구리 끓듯 하는 것이다. 아무튼 사람 몸의 방어력을 알아 줘야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나 인간들이 모진지 모르겠다.

[생물이야기 301] 인체는 기생충 투성이다 (5) : 2000-06-03

　벼룩만 해도 한살이(生活史, life cycle)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적갈색인 벼룩은 몸이 좌우로 납작하고 (빈대는 상하로 납작하다면) 다리 근육이 발달하여서 제 몸 크기(2~3㎜)의 200배를 뛰는 뜀뛰기 선수다. 암놈은 알을 방바닥 먼지(살갗의 상피세포)에 낳고 그것은 깨여서 사람의 살 비늘을 먹고 자라서 몇번 탈피를 하고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이 된다. 2억년전 화석(化石)에서 벼룩(flea)이 나온다니 우리보다 한참 먼저 이 지구에 온 대형(大兄)님이 이 곤충인 것이다. 이제 사람의 피를 빠는 벼룩은 아주 줄어버렸지만 개나 쥐벼룩은 아직도 성성하게 잘 살고 있다.

　더 무시무시한 기생충을 보자. 역시 사람은 기생충 투성이다. 성 관계때 옮(옮기)는, 음모(陰毛) 사이(아래)에 대가리를 파고 들어가 심한 소양증(가려움증)을 일으키는, 흔히 「세면발이」라고 부르는 놈이 있는데 정확한 우리말 이름은 「털이」고, 학명은 Heteroduxus longitarsis(pubis)다. 심한 경우에는 겨드랑이, 수염, 눈썹 털에도 파고 붙는다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이놈을 「게 이(crab louse)」라고 하는데 실제로 게를 닮아서 털 사이를 기어다니기 좋도록 게 발 닮은 발톱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대학생 때만도 이것에 걸린 친구들이 그 중요한 자리에다 살충제(농약)를 뿌리고 또 음모를 모두 깎거나 핀셋으로 하나하나 뽑아내는 것을 봤는데(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지)지금은 물파스 정도로 퇴치가 된다고 한다.

　사람에 기생하는 곤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사이 얇은 살에 파고드는 옴벌레(scabiesmite)가 있다. 파고든다고 했지만 실은 이놈도 살갗을 녹이는 효소를 가지고 있어서 주둥이를 대고 침을 조금만 분비하면 살갗이 스르르 녹아 구멍이 나는 것이니, 모기도 같은 원리로 「깨무는」 것이다. 그런데 오죽하면 「재수 옴 옮았다.」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필자도 경험해봤지만 하도 가려워 껍질에 피가 나도록 문지르고 긁어도 또 긁게 되는 것이 옴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산(생) 세포를 먹고 나서 싸는 분비물인 똥이나 알 때문에 일으키는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지독한 소양증(搔痒症)이다.

[생물이야기 300] 인체는 기생충 투성이다 (4) : 2000-05-27

　예고했듯이, 중남미 어느 지방의 이야기다. 보통 파리와 계통적으로는 같은 쌍시류(雙翅類, 파리나 모기와 같이 날개가 2장인 곤충을 뜻함, 이것들은 원래는 4장 이었으나 2장이 퇴화했음)에 속하는 것으로 쇠파리(말파리, botfly)라는 놈인데, 이놈은 암놈 모기를 포로로 잡아서 모기 배(복부)에다가 제 알을 낳아 붙여 두는 이상한 짓을 한다. 파리가 쉬슨 이 모기는 다른 암놈 모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피를 빨기 위해 피부에 달라붙는데 이때 사람의 피부의 따뜻한 열을 받은 모기 배에 붙어있는 파리 알이 재빨리(몇 초 안에?)부화하고 유생이 되어서 모기에서 떨어져 나와 사람의 살갗에 내려앉는다. 꼬마 구더기는 상처부위로 기어가서 쏙 들어가, 다리의 갈고리로 피부에 대가리를 처박고 숨쉬는 기관(breathing tube)이 있는 꼬리 끝을 피부 밖으로 내 놓는다. 사람의 살을 파먹고 한 달 반 동안 자라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成蟲)인 파리가 되어 날아 가버린다.

　다른 동물에 기생하는 파리들 중에 이와 유사한 번식을 하는 것들이 있지만, 놀랍게도 사람 몸에다 알을 낳는 파리가 있다니?! 그것도 직접이 아닌, 모기라는 매개체(媒介體, vector)를 이용하여 「지능적인」산란을 한다니 어찌 이놈을 그냥 「날파리」라 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하나 부언해야할 것은 보통 보기는 야행성으로 밤에 사람의 피를 빠는데, 배에 쇠파리의 알이 붙은 이 모기 놈은 본성이 달라져서 파리가 주행성이듯이 대낮에 사람에 날아가서 피를 빨아대니 이것은 「기생충(파리의 알)이 숙주(모기)의 행동(行動, behavior)을 바꾸게 한다」는 아주 좋은 예가 되는 것으로, 알고 보면 임신을 하면 입덧이 생기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음에 언제 한 번 논해야겠다)다.

　이렇게 기생하는 것들은 모두가 살갗을 뚫는 「톱이나 메스」를 다 가지고 있으며 피를 빠는 빨대, 몰래 피를 훔치기 위한 마취제와 피의 응고를 막는 항 응고제가 침에 들어있어서 들키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다. 「마취제」가 있어서 모기가 피를 빨고 날아간 1분 후에야 사람이 가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엄청난 놈들이다.

[생물이야기 299] 인체는 기생충 투성이다 (3) : 2000-05-20

　여태 이야기 한 이라는 놈은 여기 저기 기어다니며 피를 빨지만, 살갗을 파고 들어가서 사는 녀석이 있으니, 이세상 어느 누구나 머리나 이마, 눈썹의 털구멍 아래 모낭(毛囊, hair follicle)과 코 둘레의 땀구멍의 지방 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진드기(mite) 두 종(種)이 틀어박혀 살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비누로 씻고 로션을 바르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거기가 그들의 삶 터라서 쫓아낼 수가 없는 것이고, 놈들이 우리의 살아있는 상피세포(上皮細胞)를 파먹고 산다니 가관(可觀)이다. 녀석들은 현미경적이라(0.025㎜ 정도) 살 안에서 곰지락거려도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작은 발톱으로 살갗을 꽉 붙잡고있으며 그 속에서 화살 모양의 알을 낳고 그것이 부화하여 유충이 되고, 커서 성충(成蟲,adult)이 된다. 학명이 Demodex folliculorum인데 보통은 「follicle mite」라고 하는 놈으로 바늘 모양의 입을 가지고 세포를 찔러먹는데, 보통 털구멍 하나에 열 마리가 산다고 하고, 이놈은 앞으로만 기어가기에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그 자리에 돌아오지 못한다. 그 작은 놈이 간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눈썹 사이만 해도 태평양건너편만큼이나 먼 거리다. 그런데 암놈이 처음에는 암놈 혼자서 알을 낳는 처녀생식(處女生殖, virgin birth)을 하지만 다음에는 새끼 수컷과 교미를 한다니 이놈들의 에디푸스(Oedipus) 때문에 우리 눈썹만 다 빠질 판이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우리 낯 짝에서 밤낮으로 벌어지고 있건만 우리는 그것 하나도 모르고 산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아차린 어떤 독자는 갑자기 온 얼굴이 가려워지고 그것들의 고무락거림에 신경이 예민해질지 모른다.

　사람의 체 표면적은 평균하여서 1.83㎡에 지나지 않는데 이곳에 이런 복잡한 (기생충)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니 놀랍기도 하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한데, 우리 나라에는 천만 다행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중남미 지역에서는 사람의 살갗에 구더기가 생기고 번데기가 되어서 파리가 날아 나가는 상상을 불허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살지 않는 것만도 복 받았다 싶다. 다음 회에 그 이야기가….

[생물이야기 297] 인체는 기생충 투성이다 (1) : 2000-04-29

　사람 몸뚱아리도 다분히 자연의 일부라서 뭇 기생생물(寄生生物)이 들붙어서 살과 피를 빨아먹고 살고 있다.

　여기에서는 회충 촌충 같은 것은 빼고, 단지 몸밖에 빌붙어 살고 있는 기생충(체외기생)을 일컫는 것으로 세상에 만물의 영장에다 먹이 피라미드(food pyramid)에서 제일 꼭대기를 차지하는 이 「위대한」 인간을 뜯어먹고 사는 녀석들이 어떤 놈이며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지보도록 하자.

　어디 사람이 별건가. 대자연 속에서는 잡초 한 포기 또 한 마리의 벌러지와 다를 게 없고, 사람이 지구에 들끓어 넘친다고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수많은 개미떼나 모기 무리에 비하면 새 발에 피로서 숫자 놀음에서 그들에게는 대수가 되지 못한다. 한 굴(窟)에 사는 개미가 남한 인구 만한 것이 쌔고 쌨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인간본위의 사고는 자연(自然)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물인 것이니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 즉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그런 사고 방식을 가져야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일부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의 일부」란 말이 멋있는 말이다. 그것에 몰입된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객관적으로 자연, 곧 생물의 세계를 관조(觀照)할 때라야 그들이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보이고 결국은 「나」를 알고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도 자연 속에 끼어서 여러 기생물의 먹이 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것들 중에는 크게 문제가 안 되는 양성(良性,benign)인 것도 있지만, 악질도 많고 많아서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이(louse)가 발진티푸스 등 여러 병을 옮겨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죽었다.

　말이 나온 김에 이(louse) 보따리부터 풀어보자. 이도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서 몸에 기생하는 살색을 띠는 몸이(Pediculus humanus corporis)와 검은머리카락 색을 닮은 머릿니(Pediculus humanus humanus) 둘로 나눈다.(몸 이가 조금 크다) 이 둘은 같은 종(딴 아종-亞種-이지만)으로, 생물은 같은 종끼리 교미(배)를 하는 것이라, 그래서 몸 이와 머릿니는 서로 생식이 가능하다.

[생물이야기 296] 먹장어의 삶(4) : 2000-04-22

　먹장어라는 말은 깊은 바다에 살다보니 「눈이 멀었다」고 붙은 이름일 것이니, 먹장어의 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도 쓰지 않으면 먹통이 되고 마는 것이니 언제나 쉼 없이 굴려야 한다.

　꼼장어와 같은 무리에 드는 칠성장어(lamprey)를 간단히 보자. 이놈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철이 되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데 부화되어 몇년을 강에 살다가 바다로 다시 내려간다는데 이놈의 생태도 미궁에 들어 있어서 상세한 것을 소개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나라 동해안 지방, 양양 남대천에서도 쉽게 보는 것으로 옛날에는 징그러워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데 요새는 한마리에 3만원을 넘게 호가한다.

　눈 먼데 약이 된다고 했다는데 사실은 모르겠고, 이 녀석들은 다른 물고기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 물고기로, 둥근 입안에 예리한 이빨이 있어서 잘 달라붙는다. 그리고 목에 아가미구멍이 일곱개가 뽕 뚫려 있어서 칠성장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것도 먹장어 같이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만 있는 옛날 그대로 변하지 않고 머물고 있는 일종의 생화석(生化石·living fossil)인 놈이다.

　즉, 하등한 척추동물(脊椎動物)인 이 어류는 저 깊은 바다에서는 혼자 판을 치는 「왕」이라 많이 사는 곳에는 1㎢에 무려 50만 마리가 득실거린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어 미끼를 넣은 통발을 늘어뜨리면 억수로 잡히니 살코기(meat)는 포장마차로 팔려나가고, 껍질은 생각보다는 질긴 콜라겐(collagen)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뱀장어(eel) 껍질과 함께 핸드백, 구두, 가방, 손가방, 지갑 등 「피혁(皮革)」 산업에 중요한 몫을 한다.

　여기에서 첫 회에 말한 자갈치 시장의 그 아주머니들이 왜 피 튀기면서 꼼장어 껍질을 벗겨 모았는지 감이 잡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어 껍질(eel-hide)」가공기술이 「한국」이 제일이라 이 분야에 관한 외국기사나 보고서에는 빠짐없이 「Korea」가 등장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잡은 꼼장어도 죄다 냉동하여 우리 나라로 몰려온다. 그런데 이 물고기조차도 벌써 남획하여 그 수가 줄어든다고 세계의 학자들은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있다.

[생물이야기 295] 먹장어의 삶(3) : 2000-04-08

　지난 회에 언급했듯이 꼼장어는 연골이고, 많은 점액을 분비한다는 것말고도 남다른 여러 가지 생태, 생리적인 특성이 있다. 심해산(深海産)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에 살아서(바다에는 500ｍ 이하는 빛이 투과하지 않는다) 눈이 퇴화되어 흔적만 남은 살 속에 묻혀 있는 안점(眼點)을 갖고 있으며, 비늘(scale)이 숫제없고, 지느러미(fin)도 꼬리와 등지느러미가 고작이다. 아가미(gill)는 뚜껑이 없어서 나출(裸出)된 아가미구멍을 가지며, 뜨고 가라앉는데 관여하는 부레(swim bladder)까지도 퇴화하고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의 설명만으로도 바다장어나 민물장어(이것들은 모두가 경골어류-硬骨魚類-에 속한다)와 완연히 다른 물고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고 또 이 글을 읽은 사람은 한 겨울의 포장마차에서 맛 나는 꼼장어를 먹으면서 담소할 이야깃거리를 얻은 셈이다. 교양인은 어느 사물이나 사건을 두고도 30분 간 그것들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포장 집의 좌판에 놓인 닭똥집은 그렇다 치고, 진주담치(홍합이 아님), 멍게(우렁쉥이)등도 이야기를 만들면 구수한 말거리가 나온다.

　꼼장어는 암수가 따로 있는 자웅이체(雌雄異體)인데 성비(性比, ♂:♀=♂/♀)가 무려 0.01(수놈 한 마리에 암컷이 100마리)로 수놈이 매우 희소하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최대한 집단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작전으로(물개의 집단도 매한가지로 수놈은 정자만 공급하고, 개체 수가 늘어나서 먹이의 부족 현상이 오는 것을 예방함)보이며, 보통 알은 한 번에 20~30개를 낳는데 아직도 수정 방법, 시기등이 「신비의 검은 상자(black box)」에 들어있다고 한다. 아주 깊은 바다에 사는 놈이라 이것을 잡는 것도 어렵고 또 잡아도 수족관에 가져오면 기압의 차로 모두 배가 터져 죽어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얼마나 빨리 자라고, 언제 성적성숙이 되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100년을 넘게 연구한 결과가 여기에 기술한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니 무엇보다 수족관에서 사육이 불가능한데 그 원인이 있다. 하기야 신비에 가려있는 생물이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생물이야기 294] 먹장어의 삶(2) : 2000-03-25

　춘천에만도 꼼장어 집이 몇 군데 있어서 필자도 여러 번 들러 본 적이 있다. 껍질을 홀딱 벗긴, 핏기 흐르는 그놈을 석쇠에 얹어 굽는데, 열기를 받아 몸뚱이가 익어갈라치면 살아 요동치듯 꿈틀거리기 시작하니 비위(脾胃)가 약한 사람은 그 모습에 기절초풍을 한다. 실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른 오징어를 구워도 그렇듯이 단백질이 응고하면서 생기는 뒤틀림이다.

　아무튼 이 물고기는 남·북극지방만 빼고 아무 데나 사는 놈으로, 추운지방은 수심 5ｍ 근방에, 더운 곳은 저 깊은 600ｍ 아래에까지 내려가 사는데 어디에 살든지간에 언제나 바다 밑바닥에 살아서 「바다의 청소부(scavenger)」역할을 한다고 하니, 작은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나 주로 죽어 떠내려온 고기(시체)를 뜯어먹고 살기에 청소부란 별명이 붙었다.

　꼼장어는 분류상으로는 의당 어류(魚類)고, 그 중에서도 가장 하등 한것으로, 입이 똥그랗다고 하여 원구류(圓口類, cyclostoma)로 분류하는데, 원구류는 다시 크게 나눠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먹장어와 우리나라 동해안에도 올라오는 칠성장어 두 무리로 나눈다.

　먹장어는 오래 전, 우리 인간이 원숭이 꼴도 하지 못하고 있을 그 먼 옛날 3억3,000만년 전에 지구에 나타났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단연코 다른 고등한 어류와 몇 가지 차이가 난다. 입이 둥글다는 것은 곧 턱이 없기 때문으로 「무악류(無顎類)」라 부르며, 무엇보다 뼈가 물렁한 연골(軟骨)이라서 구이를 했을 때 통째로 아작아작 씹어먹을 수 있어서 좋다. 연골이라는 점에서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장어」들과는 영판 차이가 나는 것이고, 몸에 커다란 분비샘이 200여 개가 있어서 끈끈하면서도 미끄러운 점액을 많이 분비하는데(다른 물고기도 그렇다) 특히 힘 센 다른 물고기의 공격을 받으면 더 많이 내어서 큰놈은 일분(分)에 무려 7ℓ나 쏟아 붓는다고 하니 실로 믿기 질 않으며, 때에 따라서는 공 같은 점액 덩어리를 만들어서 포식자(捕食者)의 아가미를 덮어버려 질식시킨다고 한다. 하여 컴컴한 바다 바닥에 산다고 얏 볼 녀석이 아니다. 어느 생물이나 제 살아남을 궁리는 다 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생물이야기 293] 먹장어의 삶(1) : 2000-03-18

　항도(港都)부산을 찾을라치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흐르는 곳이 있으니, 여기저기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바다 냄새(바다에 사는 원생동물들의 내음임) 가득 밴 멍게, 개조개, 꼬막, 갈치, 돔 같은 해물(海物)도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투박한 사투리에 뼈빠지게 살아가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풀뿌리 인간의 본성(本性)을 발견할 수가 있는 자갈치 시장이 거기다. 옛날에는 그곳에 자갈을 쌓기나 했던가, 이름이 자갈에다 비어(卑語)인 「치」를 붙였기에 하는 말인것 같은데, 필자가 미천하고 과문(寡聞)한지라 그 뜻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언제 가도 풋풋한 사람 향기가 넘쳐흐르는 곳이라 자갈치 시장은 좋다.

　노점을 따라 걷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바닷가 쪽으로 가면 순간 발을 멈추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에 멍하니 눈이 붙박힌다. 그런가하면 다렝이 속에 껍질 벗겨진 채 피 흘리며 꿈틀거리는 일명 「꼼장어」들의 몸부림에 화드득 놀라 오만상이 찡그려지고 뾰족한 못 끝에 대가리를 찍힌 그놈을 보면 사지(四肢)가 오그라 든다. 머리끝에 칼집을 내고 껍데기를 홱홱 꼬리까지 벗기는 능숙한 솜씨에 혀가 내둘린다.

　그러나 그것이 겨울 길가의 포장마차나 대포집에서 신사 숙녀가 즐겨먹는 꼼장어가 아닌가. 자갈치 시장에도 그것만 구워 파는 집들이 즐비하다. 아무튼 그놈의 껍질을 산채로 벗기는 아주머니들의 기분이 좋을 리가 있으리오 마는 입이 포도청에다, 입가가 노란 새 새끼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놈들 머리에 먹물 몇 방울이라도 넣게 하자니 부처님의 「살생하지 말라」는 말씀도 귀 밖으로 흘려 버리지 않을 수가 없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마냥 그렇게 살아간다.

　꼼장어라는 말은 정식 우리말 이름(국명, 國名)이 아니고 아마도 「먹장어」라 부르면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먹장어(hag fish, 「hag」는 「보기 흉한 노파」를 뜻함) 무리는 그 종수가 세계적으로 60여종이 알려졌는데 우리가 먹고 보는 것은 30㎝ 정도지만 큰 종은 무려 1.4ｍ나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권오길<강원대 생명과학부 교수·http://home.hanmir.com/~drsnail >

[생물이야기 292] 식물의 노폐물인 양념(6) : 2000-03-11

　그런데 잘 관찰해 보면 야생(野生)육식동물도 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 가끔 풀을 뜯어먹는다고 하니 비타민, 미량원소를 얻는 목적도 있겠지만 이런 항 병원균인 양념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느 식품(음식)이나 과하게 오랫동안 연해서 먹게되면 그것이 돌연변이물질(mutagen), 발암물질(carcinogen), 기형유도물질(teratogen), 알레르기 유발물질로도 작용을 하는것인데, 향미료(香味料)도 독성이 있어서 역시 넘치면 좋지 못하기에 귀신같이 어린아이들이 먹기를 꺼리는 것이고 산모도 다량 섭취하면 좋지못하다. 재미나는 것은 태아 때(임신 중)나 유아 시절(수유 때)에 어머니가 양념을 즐겨 먹으면 아이들도 역치가가 올라가 잘 먹게 된다는 것이다. 모전 여전, 부전 자전.

　양념, 특히 마늘이라는 것이 얼마나 병을 예방하는데 중요한 것인가를 외국 논문의 통계자료에서 보자. 「한국 사람은 마늘 고추를 많이 먹어서 이질(痢疾, dysentry)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다는 것이다. 1971~1990년 사이에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세균성질환이 한국은 3.0건인데 비해서 일본에는 29.2건을 훨씬 넘더라는 보고가 있으니 고기(육류)요리를 하는데 일본은 14가지의 양념을 넣고 우리는 8가지를 넣는데도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우리 음식에는 마늘을 듬뿍 넣어서 농도가 훨씬 진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신토불이(身土不二)라고, 나라마다 혀(입맛)가 다 달라서 음식에 넣는 향신료(香辛料)도 다 다르고 농도에도 차이가 나며, 음식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게 쓴다. 이것이 냄새, 맛, 색깔의 문제를 떠나서 세균, 곰팡이, 효모, 바이러스까지 못 자라게 하고 죽이기까지 하며, 때로는 항암은 물론이고 항 산화제로 작용하여 세포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이제 양념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봐야할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과대평가를 해도 좋을 듯 하다. 아무튼 사람이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어릴 때의 입맛(양념 맛)하나는 그대로니 외국에 살아보거나 긴 여행을 해보면 당장 느끼게 된다. 아, 이 변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인 혓바닥이여.